▶ 사람사는 이야기/ 재미한국학교동북부협의회 제16대 박종권 회장
한국어외 ‘올바른 역사교육’ 한국학교 존재이유
첨단 교육시설 활용 등 재미있는 교육방법 필요
‘만족함에 감사’ 삶의 철학
그는 언제나 이곳에서 자라나는 한인 2세들이 어떻게 하면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 찾기에도 항상 몰두한다. 뿐만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알릴 수 있는 효율적인 교육방법에 대해서도 늘 연구한다. 교육자와 학부모로서의 경험을 통해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정체성 확립과 역사의식은 그 어떤 교육에 우선되는 교육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미한국학교동북부협의회 제16대 박종권(58) 회장이다.
■‘한글학교 & 한국학교’
그가 한국학교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미 동부지역 최초의 뉴욕한국학교에 다니면서부터다. 그리고 10년 후 막내딸도 뉴욕한국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모이자 교사도 맡게 됐다. 정체성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 허병렬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의 교육방식은 우선 ‘흥미유발’이다. 아이들은 재미가 있어야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사귀기’에도 매우 신경을 쓴다. 주변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한국친구를 한국학교에서 사귀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이들에게 큰 매력이다. 친구가 생기면 공부도 꾸준하게 하는 것을 경험을 통해 터득해서다. 효율적인 한글공부를 위해선 부모역할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한국학교는 주말학교라 일주일에 한 번 배운 내용을 주 중에 사용하지 않으면 실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녀들의 한국어 읽기와 쓰기, 숙제 돕기 등 부모의 돌봄이 꼭 필요한 이유다.
그는 어느 민족의 자녀든 모국어는 꼭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피가 얼마나 섞었느냐보다는 모국어를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단 의미다. 혈통보다는 언어를 하는 능력이 민족성이란 것이다. 미국서 태어난 한인자녀들도 우리말과 글을 알아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아무리 ‘코리안-아메리칸’이라 주장해도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무늬만 ‘코리안’일 뿐… 정체성을 상실한 아메리칸 일수 밖에 없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셈이다.
‘한글학교’는 한글만 가르치는 곳이고 ‘한국학교’는 한국, 즉 한국의 정신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래서 그는 뉴욕일원 주말학교는 정체성 교육이 목표이기 때문에 ‘한글학교’가 아닌 ‘한국학교’라 강조한다. 그렇기에 한국어 외에도 한국역사, 문화, 미술, 음악, 사물놀이, 서예 태권도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 못지않게 한국역사/문화교육이 한국학교의 존재이유란 것이다.
“외국 아이들처럼 행동하던 학생들이 한국예절을 배우고 전통 북을 배우며 코리안-아메리칸 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분필 들 힘이 있을 때까지 가르치겠다“며 언제나 그랬듯 한국어교육의 사명감을 놓지 않고 싶어 한다.
■‘앞으로 30년을 위한 토대구축’
그는 2011년 제14대 부회장으로 재미한국학교동북부협의회와 인연을 맺었다. 뉴욕한국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협의회에 참여했다. 제15대 때에는 수석부회장을 맡았다. 당시 뉴욕지역 한국학교 40년사 편찬위원회의 자료위원으로 활동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한인사회 관련 책을 출간한 경험이 풍부해 자료수집 및 취재 역을 맡았다. 그래서 2015년 이광호, 민병갑, 오지영 씨 등과 함께 ‘뉴욕, 뉴저지 지역의 한국학교 역사 및 현황’에 관한 책자를 출간했다.
동북부협의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10월1일 그는 제16대 회장에 취임했다. 현재 2년 임기의 약 절반을 지낸 셈이다. 회장에 취임하면서 “뉴욕일원 한국학교들이 ‘더불어 다 함께’ 발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선도학교는 지속적 발전을 통해 모델을 제시하고, 영세하거나 후발학교들은 조속히 체계를 잡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회원교를 증가시키는 양적발전과 한국어 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질적 발전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개인의 명예욕을 위한 행사보다는 협의회의 정신이 잘 담겨있고 역사를 이어오는 행사들을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데 치중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번역대회와 나의 꿈 말하기 대회, 어린이예술제, 교사연수회 등의 연례행사와 글짓기, 동요대회, 동화 구연, 어린이 민속대잔치 등 회원교들의 기존 행사 등을 무난하게 치렀다. 지금은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한국역사문화체험캠프 준비에 분주하다.
1년여 남은 임기에 현재 63개의 회원교를 80곳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부지역의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학교간 갈등은 협의회 차원에서 경쟁을 최소화하고 교육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귀띔한다.
그는 급변하는 한국어 환경에 한국학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임을 강조한다. 한류영향으로 외국인들의 학습열기가 급격히 높아졌다. 입양아, 외국인 자녀와 함께 2세 학부모들이 증가하고 순수 동포 자녀 비중은 오히려 낮아졌다. 따라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당위론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한 만큼 셀폰앱 등 첨단 교육시설을 활용 한국어 교육을 재미있고 스스로 매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협의회 중심으로 각 한국학교의 협력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그는 미주한국어교육의 산파이자 산증인인 허병별 최대회장을 비롯한 훌륭한 역대 회장들과 같은 반열에서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큰 자긍심으로 여기며 한국학교의 역사를 이어가고 계승한 책임감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협의회의 지속적인 발전은 역대회장들과 모든 회원교의 헌신과 봉사 덕분”이라는 그는 “남은 임기동안 기존사업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고 또 다른 30년을 준비하면서 한 단계 재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감사하는 삶’
그는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3남1녀의 셋째. 형, 누나와 남동생이 있다. 학창시절 성격은 온순하고 조용한 편. 운동보다는 책보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당시 한국의 시대적 영향으로 과학자. 성균관 대학을 다니며 한때 대학교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당시 시국은 공부마저 사치스런 시기였다. 대학 3학년 때인 79년 자원입대 포병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복학해서 공부를 마치고는 광고회사와 컴퓨터 네트워크 회사에 다녔다. 1984년 만난 여성과 4년의 연애를 한 뒤 검소한 생활습관이 맘에 들어 결혼했다.
1988년 결혼직후 처가가 있는 플로리다로 도미, 89년 첫딸을 낳은 뒤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 후 어학공부와 광고회사를 다니다 1991년 뉴욕한인신문사에 입사, 10여 년 근무하면서 미국사회를 배우고 이민사회를 깊이 있게 경험했다. 1993-1995년까지는 뉴욕한인기자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뉴욕대학(NYU)에서 포토저널리즘 석사공부를 했다.
2001년부터는 한민족포럼과 인연을 맺고, 2003년 월간 한민족 편집장으로 일하면서는 전 세계 한민족 사회를 접하며, 동포 정체성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뉴욕한인테니스협회 회장을 맡아 US오픈 현장인 USTA 내셔널테니스센터에 테니스 학교 설립과, 한국일보배 대회를 개최하는 등 테니스 붐을 일으켰다.
당시 ‘대회유치는 무모하다’는 우려를 무릅쓰고 시작한 제1회 한국일보 배 테니스대회는 현재 미 동부 최대의 테니스제전으로 발전해 지난 7월 1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렀다. 그 후 민주평화통일뉴욕협의회 교육 분과위원장과 부회장, PS 152Q의 학부모회 부회장 등도 역임했다. 교육, 체육, 통일,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함으로써 한국의 대통령 표창과 뉴욕한인회의 올해의 한인상, 재미한국학교협의회 올해의 교사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삶의 철학은 감사하는 삶이다. 어린 시절부터 ‘만족함을 알면, 항상 즐겁고..능히 참으면 려 마음이 스스로 평안하다는 뜻인 지족상락 능인자안(知足常樂 能忍自安)’의 가훈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머님이 직접 써서 남겨주신 ‘가훈 액자’를 거실에 걸어두고 마음에 새기며 늘 삶을 돌아본다.
천주교 신자(세례명 루카)인 그는 영적 건강함 못지않게 육의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꾸준히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금요일엔 아내와 딸과 함께 테니스를 치며 행복 역시 ‘현재 나의 모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그는 협의회 회장은 ‘역사의 계승자’라고 여기고 있다. 선구적 선배들이 쌓아놓은 협의회 정신을 잘 이어받아 후대로 발전 계승하는 것이 회장의 덕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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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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