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번 이명박, 503번 박근혜, 3617번 윤석열.’ 감옥에선 대통령도 예외 없이 수인번호로 불린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건 고유성을 지우는 일. 교정 대상으로만 대하겠단 뜻이다. 나치는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에게 이름부터 빼앗았다. 바코드인 양 팔뚝마다 번호를 문신으로 새겼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증언록 제목처럼,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이름을 찾아 주고 불러 주는 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2015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시민 304명이 한 명씩 부르는 추모행사를 했다. “최정호!” “수현아!” 다 부르지도 못하고 사람들은 울어버렸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등은 2010년 국군포로와 납북자 8만4,000명의 이름을 2박 3일간 쉬지 않고 불렀다. 미국 뉴욕 9·11 테러 추모공간엔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이 있다. 이름 사이사이에 2,983개의 일생이 고여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름을 부르는 것의 의미를 절절하게 안다. 김
범서야, 삶은 마치 조각 퍼즐 같아.지금 네가 들고 있는 실망과 슬픔의 조각이네 삶의 그림 어디에 속하는지는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단다.지금은 조금 아파도, 남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아도지금 네가 느끼는 배고픔, 어리석음이야말로결국 네 삶을 더욱 풍부하게 더욱 의미있게 만들 힘이 된다는 것네게 꼭 말해주고 싶단다. -장영희의 중에서삶은 당장 완성된 그림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고통 후에 모습을 드러내는 퍼즐 같은 것입니다,그 퍼즐 하나하나에는 실패와 좌절, 실망과 슬픔, 부족함이 들어있습니다.그러나 지금의 아픔은 결핍이 아니라 완성의 길에서 겪는 성장의 통증이며언젠가 맞춰지는 미완성의 조각일 뿐입니다.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거나 원하는 직장에 떨어져 실망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다른 길을 찾다가 우연히 더 잘 맞는 분야를 찾고결국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잠깐의 실패는 성공의 길에 만나는 아픈 퍼즐 조각입니다.알바로
중동 전쟁 여파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을 팔고 있다. 금값 하락 탓도 있지만 유가 급등과 통화 변동성 확대가 더 큰 이유다. 금을 팔아 외환시장 개입에 쓸 달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3월 한 달에만 금 보유량을 131톤 줄였고 폴란드도 군비 확충 비용을 위해 금 매도를 검토 중이다. 러시아 역시 몇 달째 금을 내다 팔았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비상금을 꺼내 쓰는 형국이다.■중국은 정반대다. 인민은행은 17개월째 금을 사들이며 3월에도 4.5톤을 추가해 보유량을 2108톤으로 늘렸다. 신흥국들이 내놓는 금을 중국이 흡수한 셈이다. 가격에 따른 단기 대응이 아니다. 보유 금의 달러 가치가 줄며 손실이 나도 매입을 멈추지 않았다. 위안화 변동성 대응뿐 아니라 자산 안전성을 높여 위안화 국제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산이다. 판궁성 인민은행장의 “결제 시스템의 국경 간 연결성을 강화하겠다”는 말도 선언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유럽은 계산기를 다르게 두드린다. 중국이 금을 쓸어
미국, 이스라엘 연합국과 이란과의 전쟁은 예상보다 더 길게 진행되고 있다. 삼, 사주 정도면 끝날 것이란 전쟁 초기의 예측과는 다른 양상이다. 연일 전해지는 전쟁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다닐 때 방공훈련 했던 일이 떠 올랐다. 수업 중에라도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학교 내 모든 수업은 중단되고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모였다.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뒷산으로 급히 몸을 피하는 훈련이었다. 영문도 잘 모른 채 산으로 달리던 우리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어떤 여학생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후 재학 중에 교련이라는 과목으로 군사 훈련은 계속되었다. 올해는 육이오 전쟁이 휴전된 지 76년째이다. 아직도 조국의 남북 간에는 철책선이 길을 막고 있다.미국으로 이민 온 후로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 듯했다. 안전한 나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핵공학을 전공한 막내아들이 가진 첫 직장은 뉴멕시코 Albuquerque(앨버커키)에 있는 샌디아 국
지난 4월 5일은 부활절이었다. 미국에서 부활절은 국가 기념일로 지켜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크리스챤이 아니어도 부활절을 생활 속에서 맞이하게 된다. 크리스챤에게 부활절은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완성된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들에게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사람이 죽었다가 3일이 지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은 없기 때문이다.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왜 믿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저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믿는 크리스챤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왜 필요하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기독교라는 종교가 필요하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아도, 기독교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