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세월이었다. ‘구한말. 일제 강점기. 해방. 분단. 동족상잔. 그리고 남북대치’- 눈물과 피로 얼룩진 세월이었다. 그 격동의 고비마다 한인들은 밖으로 흩어져 나갔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꿈을 잃지 않았다. 백년의 세월과 함께 이 땅에만 오늘날 200여만이, 또 600여만의 한인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삶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세월은 ‘디아스포라 코리아’의 한 세기였다. 미주 한인 사회도 흩어짐의 아픔에서 출발됐다. 최초의 한인 이민선이 하와이에 도착한 지 근 백년. 한인 사회는 이제 전 미국 50개주를 연결하는 거대한 공동체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LA의 경우 이민 초기 제퍼슨가 일대에 서너개 옹기종기 모여있던 한인 업소가 이제 수만개를 헤아리게 됐다. 눈부신 팽창이고, 발전이다.
한인타운은 사실 무에서 시작됐다. 이 땅을 선택한 1세들의 땀과 눈물과 피가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게 한인타운이다. 이들은 꿈을 가지고 ‘기회의 땅’ 미국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밤낮 없이 달려왔다. 그 결정체가 오늘의 한인타운이다. 억척같은 생명력으로 충만한 이민자만이 이룰 수 있는 신화다. 신화는 그러나 화석화되기 쉽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대변화의 파장을 외면하고 ‘신화 시대’의 옛 환상에만 젖어 있을 때 그 신화는 생명력을 상실한다.
커뮤니티의 내부로 눈을 돌릴 때 그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업계가 그렇다. 업소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특정 업종에만 몰린다. 규모가 영세하다. 과당경쟁에 시달린다. 만성불황의 악순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과감한 도전 정신이 결여돼 있는 증거다.
한인 커뮤니티는 여전히 ‘구심점이 없는 사회’라는 레이블을 못 떼고 있다. 숱한 단체가 있지만 주류 사회와의 가교 역할을 하는 대표 단체가 없다. 주류 진출은 구호로만 그친 형편이다. ‘통일된 아젠다가 없는 사회, 구심점이 없는 커뮤니티’가 한인 사회의 현주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가를 4.29폭동 때 이미 치렀다.
한인 사회는 안팎으로 또 한차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 도전은 전 미국을 뒤흔드는 대변화를 뒤따른 것으로, LA가 바로 그 진앙지다. 아시아계 등이 주력이 된 제3의 이민 러시가 그 변화의 기본 축으로 이와 함께 펼쳐지는 태평양시대의 개화는 전 미국 사회에 일대 변혁을 몰아오고 있다. 이 변화는 이민그룹에게 특히 적극적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소수계가 다수를 점하게 되는 만큼 미국 사회 건설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주문이다.
한인 사회에 밀려드는 변화의 요구도 다름이 아니다. 이 땅에 이민 뿌리를 내린지 이미 100년, 주인의식을 가져달라는 시대적 요청이다. 한인 사회도 이제는 다민족 사회의 성숙한 일원으로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공동 사회를 함께 떠받드는 데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다. 이 요구는 분명 새로운 도전이다. 그리고 커뮤니티의 생존과 장래와도 직결돼 있다.
이와 관련해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게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 확립’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내 목소리’를 간직한 채 새 문화 창조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과 가치관을 확립시키면서 이를 미국 문화에 접목시키는 것이 바로 미주 한인에게 주어진 몫이다.
이보다 앞서 요구되는 게 있다. 이민자 정신의 회복이다. 이민은 새로운 시작이다. 변화에의 적극적 선택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정신, 스스로 변화에 뛰어드는 정신이 이민자 정신이다. 이민자 특유의 넘치는 생명력이야말로 ‘위대한 미국’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다. 한인 사회가 시급히 회복해야 할 게 바로 이민자 정신이다. 이민 100주를 맞은 시점이 그 타이밍으로 이민자 정신의 원형을 회복해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그 정신은 바로 축복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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