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생각
▶ 김현덕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삼나무 숲 속에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는 기도원에 가끔 가곤 한다. 사슴이 와서 꽃을 먹으니까 들어온 후에 꼭 문을 닫으라는 부탁 메시지가 달린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장미꽃들이 가득히 핀 정원이 있다. 장미꽃을 키워보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사슴이 다 먹어버려 포기하였기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장미꽃을 볼 적마다 정원을 가꾸시는 분에게 감사하면서 꽃향기에 취하곤 한다.
얼마전 들렀을 때,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쪽진 새댁처럼 항상 단아하고 깔끔하게 가꾸어 진 정원에는 한물 간 몇 송이의 장미꽃들이 마른 가지에 달려있었다. 정원에서 일하시는 기도원 목사님께 "지난해도 장미꽃이 아름다웠지요?" 하고 여쭈었다. 지난해는 일 때문에 다른 해처럼 정성 들여 돌보아 주지 못하였다 면서, "살아있는 모든 것은 손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게 없다"고 하셨다.
그렇다. 식물도 정성 들여 아침저녁으로 돌봐주어야 제대로 빛을 발하는데 영성과 감성과 지성을 지닌 인간은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집을 나간 십대 딸을 찾기 위해 가슴을 두드리면서 사방을 헤메이며 애타하는 친지를 생각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은 손이 필요하다"는 말의 교훈을 음미하여 본다.
친지는 아이가 어렸을 때에 미국에는 베이비 시터가 비싸다는 이유로 어린 아기를 한국에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고는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기 위해 분주히 살았다. 부모 떨어져 사는 어린 외손녀가 가여워서, 또 귀여워서 할머니가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였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학교에 가기 위해 미국에 돌아 온 아이는 자기 뜻대로 안되면 성질을 부리고 또래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어 자타가 공인하는 말 안 듣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자녀들만이 우리의 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부사이도, 친구사이도 가꾸는 손이 필요한 것을 우리는 안다. 서로 돌보며 가꾸지 않으면 관계는 메말라 죽어 버린다. 심지어는 자동차와 같은 움직이는 기계도 제때에 오일을 갈아주고 손을 봐주지 않으면 고장이 나지 않는가 말이다.
생명이 있는 것들을 돌보아주는데 필요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돌보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꾸준히 돌보아야 한다. 관심을 가지고 정성껏 돌보아야 한다.
최고의 아름다운 꽃이 우연히 피기를 기다리는 정원사는 없을 것이다. 정원사는 제때에 잡초를 뽑아주고, 가지를 쳐주고, 벌레를 잡아주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돌본다. 마찬가지로 부모들도 자녀들을 바르게 가르칠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남을 배려 할 줄 알고, 참고 기다리는 마음을 어렸을 적부터 아이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아이 혼자 배우기를 기다리는 것은 우연히 최고의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정원사와 같지 않을까.
살아있는 것들은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정원사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벌레를 잡아주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본다. 꽃나무도 정성을 들이면 가꾸는 사람의 사랑을 감지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감성을 가진 인간이 사랑을 감지 못할까.
잘 돌보기 위해서는 정성만으로 부족하다. 그 분야에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 장미꽃을 가꾸기 위하여서는 장미꽃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듯이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하여서는 자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자녀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아이들의 심리를 알아야 하고,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자녀를 잘 키운 주위사람들의 경험을 통하여 얻을 수도 있고 좋은 책을 통하여 얻을 수도 있다.
장미꽃이 정원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듯이, 한 인간을 가꾸어 꽃피게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부모의 손, 스승의 손, 친지들의 손, 친구들의 손, 주일학교 교사의 손. 수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는 꽃나무들을 떠올리며 방황하는 친지의 딸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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