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현 / 사진제공=넷플릭스
'옥자'가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기 전까지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자 '옥자'의 친구이자 가족인 산골소녀 미자는 꽁꽁 숨겨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옮겨진 옥자를 구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소녀 미자는 영화의 공개와 함께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그 미자를 연기한 이는 중학교 1학년인 배우 안서현(13)이다.
칸 공식 데일리인 할리우드리포터는 안서현을 콕 집어 소개하면서 "이 13살 배우가 틸다 스윈튼과 제이크 질렌할 같은 빅스타에 맞서 돋보이는 연기를 펼쳤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 미국 아이온시네마의 찬사도 이어졌다. 이런 열띤 분위기 속에 생애 첫 칸영화제를 즐기고 있던 안서현을 만났다. 영화 속 미자처럼 당차고 믿음직한 안서현은 연기를 시작하던 4살 때부터 꿈꿨던 무대에 왔다며 동그란 눈을 반짝였다.
-'옥자'로 칸 영화제에 왔다. 공개 이후 연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수상에 대한 기대도 있나.
▶칸영화제는 연기를 시작했던 4살 때부터 꿈꿨다.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배우들이 로망이지 않나. 그저 막연히 꿈꿔왔다는 표현이 딱 맞다. 수상 가능성은 상상도 못하겠다. 여우주연상이라니 꿈도 안 꾸고 있다. 감독님께서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봉준호 감독,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릴리 콜린스에 변희봉 선배까지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상과 사진을 보니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 같더라.
▶긴장해도 잘 표현하지 않고 담담하게 넘기는 편이다. 칸 호텔에 왔을 때까지도 뭔가 실감이 안 나서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레드카펫 위에 서니 조금 달랐다. 70회 영화제의 빨간 포스터가 레드카펫 위에 있는데 도착해서 그걸 보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옆에 감독님도 계시고 배우들도 함께 서서 촥 걸어 올라가는데, 주위에 카메라도 많이 있고 마치 '옥자'의 마지막 컷을 찍는 느낌이었다. 피날레, 마지막 촬영처럼.
-듬직하고도 다부진 모습을 보니 봉준호 감독이 '중견배우 아니냐'며 믿음직해 했던 일이 오버랩되더라.
▶그 느낌이 감사했다. 배려와 존중이 엄청나시다. 연기에 대해서 말하실 때도 감독님에게 배우에게 자유를 시는데 뭔가 딱 정해진 틀 안에 자유를 주신다. 연기하기에는 훨씬 편한 부분이 있다. 식사 메뉴를 고를 때도 '아무거나'보다는 '면 중에서 골라보자 이 쪽이 선택하기가 편하지 않나. 배우가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도와주신 것 같다.
-'옥자'에는 어떻게 캐스팅됐나.
▶사실 오디션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그 경로로 캐스팅되지는 않았다. 지난해가 연기한 지 10년이 된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 들어가면서 그 작품을 끝으로 잠시 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즈음 오디션 공고를 봤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쉬려던 참이었지만 봉준호 감독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게 목표였다. 아버지와 함께 장문의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 그러고도 연락이 없어 '연락이 너무 많이 와 못 보셨겠거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1~2달 만에 루이스픽쳐스 서우식 대표님이 전화를 주셨다. ('감독님이 좀 보잡니다')
연락이 왔으니 목표달성이다 생각했다. 사무실 문 열어준 것이 봉준호 감독님이신 거다. 처음 반겨주실 때부터 '꼬마를 본다'는 게 아니라 '이 배우를 내 사무실로 초대했구나' 느낌으로 대해주셨다. 엄청 신이 났고 너무 신기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니 2년 전인데 이미 옥자 모형이 방에 촥 있었다. 그 설명을 너무 디테일하게 해주셔서 들으면서도 '이거 비밀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알면 안될 것 같은데' 이 생각을 했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 수다가 시작됐다.
-영화 이야기를 하고 바로 캐스팅된 게 아니었나보다.
▶보통 감독님들을 만나면 스케줄 확인하고, 연기관이 어떠냐, 대본 읽어봐라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봉준호 감독님은 '오늘 밥 뭐 먹고 왔어' '친구들이랑 뭐했어' 이런 걸 물어보셨다. 어 어 하면서도 '떡볶이 먹었고요 그네 타다가 넘어졌어요'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다 '다음에 보자' 하고 끝났는데 정말 다음에도 불러주셨다. 그 때는 작품 이야기를 하시겠지 했는데 그게 한 10개월 이어졌다. 장소를 옮기시기에 '아 이제 진지한 이야기 하나' 하면 '여기가 마카롱 맛집이야' 이러시곤 했다. 정말 맛있다 하면서도 '이래도 되나' 하긴 했다. 대본은 10개월이 지나 받았다.
안서현 / 사진제공=넷플릭스
-대본의 느낌은 어땠나. 봉준호 감독은 '본인이 해석을 스스로 해 딱히 설명하거나 덧붙일 게 없었다'고 했는데.
▶대본을 통으로 주셨다. 하루에 한 장씩 읽어도 되니까 정말 천천히 읽으라고, 아무도 보여주지 말고 네 생각을 말해달라고 하셨다. 하루에 다 읽었다.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 달에 20번 가까이 읽었다. 감독님께 말씀드렸던 내용 중 하나가 '미자가 옥자 엄마 같아요' 하는 거였다.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하나하나 풀어주셨다. 제가 봤을 때는 엄마였어야만 할 수 있는 행동들을 미자가 한다. 내가 죽어도 되니까 얘는 데려와야겠다는, 자식을 보는 엄마에게서 나타날 듯한 본능이 있다. 모성애가 있고 미자가 옥자 엄마 같다는 게 제 의견이었다.
-영화를 보고 안서현이란 배우를 만나니 미자와 안서현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약 80% 정도. 대본을 읽고 저도 미자와 제가 닮은 구석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다. 저도 불의를 보면 참는 성격이 못 된다. 쓰레기 버리고 하는 걸 못 봐서 내가 줍고 만다 할 때가 많아 친구들이 환경미화원이라고 할 정도다. 감독님이 촬영 중 유난히 마음에 들어하는 표정이 있지 않나. 생각해보면 진심으로 안서현에게 우러나는 감정이 미자에게 보일 때를 좋아하시더라. 감독님이 이상한 데서 매력을 느끼신다. 이렇게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감성변태? 느낌이 있다.
-예를 들면?
▶'매운탕 먹고 싶어' 하는 장면을 찍다가 제 목소리가 뒤집어졌는데 감독님이 너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난 이걸 쓸 거야'라고 하시는 거다. 결국 그 장면이 마지막까지 들어갔다. 신기했다. 보면 제 얼굴이 늘 땀도 나고 눈물도 나고 얼룩덜룩하다.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님과 봉 감독님 둘이서 '저 얼굴이 너무 사랑스럽지 않아' '더러움 속에 묻어있어야 미모가 빛난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그런 독특함이 있는 분이다.
-반면 봉준호 감독이 대단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을 텐데.
▶늘 느끼는 감정이다. 배우 미자 입장에서 말씀드려보자면 정말 디렉팅을 잘 하신다. 실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을 대입해서 설명해주시는데 비유법이 너무 이해가 잘 된다. '아 이게 이 감정이구나' 생각이 드는데 배우로선 너무 신기한 거다.
-'옥자'는 안서현에게도 배우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 같다.
▶차근차근 연기를 해 왔고 아직 가고 있는 중이다. 연기를 하다가 만나는 정말 중요하고 엄청난, 값진 역할이다. 그런데 너무나 갑자기 큰 기회가 왔다. 저는 개인적으로 걱정이 있다. 좋은 작품을 하고 나면 다음을 기대하시기도 하고 관심도 쏠리지 않나. 너무 자랑스러운 작품이지만 제게 '옥자'는 '옥자'일 뿐이다. 저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다. '옥자' 이후 이미 영화를 한 편 찍었다. '미망인'이라는 단편이다. 그건 여전히 이전처럼 꾸준히 활동하겠다는 저의 다짐이기도 하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4살부터 생각해온 이야기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면, 촬영장에서 스태프가 같이 작업하고 싶었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스태프 분들이 현장에서 만나면 이전 작품에서 만났던 배우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는데 '저렇게 칭찬해 주시는 분들 중에 내 이름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옥자'를 찍고 하나가 더 추가됐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였으면 좋겠다.
<스타뉴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4살때부터 이런꿈을 꿀 줄 알았다니 대단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