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이번 주말 사흘간(25~27일) LA필하모닉과 함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4번을 연주한다. “모차르트는 손열음이 제일 잘 친다”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자못 기대가 크다.
손열음(38)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데뷔는 늦은 감이 있다. 그녀는 요즘 세계무대에서 각광받는 K-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의 맏이로서, 조성진 임윤찬 김선욱에 앞서 국제음악계에서 먼저 인정받고 떠오른 재원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콩쿠르에서 최연소 1~2위를 차지했고, 23세 때인 2009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은메달과 실내악상을 수상했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준우승하면서 모차르트협주곡 최고연주상과 현대작품 최고연주상도 받았는데, 이때 1위가 다닐 트리포노프였으니 대진 운이 좋지 않았다. 워낙도 이 콩쿠르는 우승이 러시아출신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유명한데 말이다. (이때 3위는 최연소 출전한 17세의 조성진) 여기서 손열음이 친 모차르트협주곡 21번(‘엘비라 마디간’)은 교본과도 같은 연주로 회자되며 그 영상이 유튜브 2,500만 뷰에 달할 정도로 호평 받았다.
손열음을 15년 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입상자로서 미국연주 계약에 따라 2010년 벤추라 뮤직페스티벌에 초청됐을 때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이 국제콩쿠르 상위권에 입상하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벤추라까지 쫓아가서 리사이틀을 보고 리뷰도 썼다. 베토벤, 슈만, 슈베르트, 리스트, 바흐 등을 연주한 그때의 감상 몇 구절을 옮겨보면,
“그녀의 연주를 듣는 것은 아주 맛있고 신선한 과일바구니를 선물 받는 것 같았다. 색깔도 모양도 맛도 다르지만 하나하나 예쁘고 향기로운 과일들을 정성껏 그릇에 담아주는 향연에 초대된 기분이었다. 한 음도 밀리거나 뭉개지지 않는 고도의 정확성, 고전낭만파 음악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섬세한 테크닉, 더함도 덜함도 없이 딱 떨어지게 움직여주는 서정, 감정의 격정과 폭발마저 탄력적으로 제어하는 유려한 표현력은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이 감상은 지금도 그의 연주 동영상을 볼 때마다 유효하다고 느낀다.
손열음은 2018년 드림오케스트라의 초청으로 다시 LA를 방문해 지퍼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적이 있는데 한인들로 가득 찬 연주장은 시종 번잡스러웠고, 프로그램이 다 끝나기도 전에 누가 꽃을 들고 나오는 등 실망스런 분위기가 충만하여 거의 즐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진지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디즈니 홀에서 손열음을 만날 생각을 하니 오래전 기억이 새삼스러워 며칠 전 다시 줌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 음성, 겸손한 태도,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15년 전인데도 벤추라에서의 연주를 기억하고 있는 그녀는 그때 분위기가 무척 좋아서 기억에 남아있다며 당시의 레퍼토리와 앙코르, 그때 입었던 파란색 드레스까지 소환해냈다.
독일 하노버에 거주하며 일년에 70~80차례 연주회를 갖고 있다는 손열음은 LA 공연을 앞두고 “디즈니 홀은 세계적인 공연장인 만큼 얘기도 많이 듣고 평소 궁금했던 연주 홀 중 하나였다”면서 “무대에 서게 돼 너무 기쁘고 LA필하모닉과의 첫 협연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휘자 라이언 뱅크로프트(Ryan Bancroft)와는 전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연주한 경험이 있는데 호흡이 잘 맞아서 이번 모차르트 협연도 고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콘체르토 24번에 대해서는 “모차르트가 남긴 25개 피아노협주곡 중에서 단조를 쓴 2개 중 하나로 다른 곡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설명하고 원래도 제일 좋아했지만 직접 치기 시작하면서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중 가장 많은 종류의 악기가 동원된 24번(C단조)은 어둡고 진지하고 극적이어서 협주곡이라기보다 교향곡적인 작품이다. 베토벤은 이 곡에 대해 “우리는 그와 같은 어떤 것도 절대 만들 수 없다”며 자신의 피아노협주곡 3번(C단조)의 모델로 삼았다.
2023년에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 18곡 전곡 음반을 발매한 손열음은 언젠가 피아노협주곡도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다. “모차르트는 내 음악의 모국어이자 집”이라는 그의 연주에 대해 밴쿠버 선은 “우아하고 깨끗하며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 모차르트 시대의 정신과 매우 유사한 동시에 철저하게 모던하다”고 평했다.
손열음은 연주 외의 활동에도 열정적이다. 2018년 평창 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아 4년 동안 활약했으며, 2022년에는 세계 50여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걸출한 한국인 연주자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오케스트라를 꾸리는 ‘고잉 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32세 때 제62회 부조니 국제피아노콩쿠르의 예선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었는데, 이는 30대의 젊은 아시안 여성이 선임된 최초의 사례다.
한편 이번 콘서트에서는 스웨덴 작곡가 앤더스 힐보그의 ‘사운드 아틀라스’가 미국 초연되고, 덴마크 작곡가 카를 닐센의 심포니 4번 ‘멸할 수 없는 것’(The Inextinguishable)이 연주된다. 두 세트의 팀파니가 대결하는 특별한 교향곡이다. 이래저래 많이 기다려진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