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는 재미있다. 짐작과는 늘 다른 일이 일어나는 우리네 인생처럼, 자다가 꾼 꿈처럼. 모든 슬픔 속에 존재하는 희극처럼 엉뚱한 이미지들이 유머처럼 부풀려지기도 하고 불안하게 왜곡하기도 하면서 우리를 현실을 넘어선 무한대의 상상과 환상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흐물거리며 엿처럼 길게 늘어진 시계(살바도르 달리), 컵과 우산(르네 마그리트), 조각상과 고무장갑(조르지오 데 키리고 )… 이처럼 생뚱맞고 엉뚱한 콘트라스트들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우리 인간들만의 특권이랄 수 있는 상상력. 즉 모든 것을 왜곡해서 상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잡고 늘어져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것을 총체적으로 구축해 놓은 듯 우리를 꿈꾸게 한다. 상식적인 배치가 아니라 일치하지 않는 낯설음에 의한 재구성은 우리들의 상상을 무한대로 자극하는 사유의 즐거움이다.
특히 초현실주의 화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벨기엘 출신의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이다. 미술가라기보다는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를 즐겨한 이 초현실주의의 거장은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낯설고 거북한 느낌을 들게 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이질적인 사물들 사이의 기발한 연결, 예를 들어 우산 위의 물컵, 대낮에 등장하는 밤거리, 사과와 화강암, 사람의 몸과 물고기머리의 결합 등 외관상 서로 관련이 없는 듯한 형상들을 함께 등장시키는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질서정연한 세계와 법칙에 역행하듯 사물이나 상황의 배치가 낯설다.
그러나 그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그려진 대상은 오히려 사진기로 찍은 것처럼 너무나도 선명하고 현실적이어서 마치 가족이나 연인을 예상치 못한 낯선 곳에서 마주쳤을 때 뚜렷한 인상을 실감하는 순간처럼 그림 속 사물들이 낯선 공간속에서 ‘즉물적’(있는 그대로)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흔히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회화로서의 미적 관심은 물론이고 철학자의 탐구 자세를 요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아마 그의 그림을 보면 일단 이게 뭐지? 왜 그렇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인 듯한데 왜 우산 위에 물컵이 있는지, 왜 하늘에 화강암이 떠있는지를 궁리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철학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이리라.
당혹스럽고 때론 지적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서로 다른 존재들 간의 숨겨진 대응관계를 어떻게 해서든지 해석해 보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속박당한 사유의 틀을 어렴풋이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고유의지로, 자유로운 행위로 생각하며 말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타인들, 그 시대의 사회구조, 무의식이라는 구조, 법칙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한정된 존재이다.
그의 작품 속의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이미지들은 오직 원하는 것만 보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들의 전형적인 생각에 대한 도전이며 그의 작품을 보며 느끼는 우리의 거북스러움은 모든 사물, 타인,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해 우리의 인식이 갖고 있는 한계의 드러냄이기도 하다.
각각 다른 두 가지 개별적 존재가 서로 스며 한 공간 내에서 ‘실제적 화합물’이 된 그의 상징적이고 시적인 작품들은 우리의 생각과 꿈, 무의식들을 눈에 보이게 함으로 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전 세계가 악수하는 즐거운 상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하나의 오브제가 반드시 그 이름만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적합한 또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예술의 실질적 가치는 자유로운 드러냄에 있다” <르네 마그리트>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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